미니정원

Day 4. 물 주는 시간, 마음을 적시다

world2002-01 2025. 10. 13. 02:37

1️⃣ 하루의 끝, 초록이 그리운 시간

오늘은 유난히 하루가 길었다. 아침 회의부터 야근까지, 하루 종일 머릿속이 복잡했다. 퇴근길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딘가 메말라 있었다.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화려했지만, 그 속의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.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베란다로 향했다. 어둠 속에서도 소담이는 여전히 푸르게 서 있었다. 며칠째 물을 주지 않아 흙이 조금 말라 있었다.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찔렸다. 나처럼, 소담이도 목말랐을 것이다. 잠시 회사 생각을 잊고, 주방에서 물을 받아왔다. 그 순간 이상하게도 ‘이 물은 소담이에게 주는 게 아니라, 나에게 주는 거야’라는 생각이 들었다.

 

Day 4. 물 주는 시간, 마음을 적시다


2️⃣ 물을 붓는다는 건 마음을 돌보는 일

작은 컵으로 조심스레 물을 흙 위에 부었다. 물방울이 흙 속으로 스며들며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. 그 소리가 내 마음까지 적시는 듯했다. 물을 주는 일은 단순한 돌봄의 행위가 아니었다. 하루 동안 쌓인 피로와 감정을 씻어내는 의식 같았다. 소담이의 잎사귀가 반짝이기 시작했다. 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 방 안의 조명을 받아 반사될 때, 그 반짝임이 마치 나를 위로하는 눈빛처럼 느껴졌다. 그 작은 생명체에게 물을 주며 나는 나 자신에게 “괜찮아, 오늘도 잘 버텼어”라고 말해주고 있었다. 이런 게 진짜 힐링라이프가 아닐까.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회복의 시간.


3️⃣ 초록이 알려준 쉼의 속도

물을 주고 난 뒤, 베란다 의자에 앉았다. 방금까지 분주하게 뛰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.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도시의 불빛이 흙 위에 부서지고, 공기가 달라졌다. 나도 모르게 숨을 천천히 쉬었다. 이런 시간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. 식물은 늘 느린 속도로 살아간다. 하루에 몇 밀리미터 자라기도 힘들지만, 그 느림 속에서 깊게 뿌리를 내린다. 베란다식물과 함께 있으면, 나도 그 속도에 맞춰 숨을 쉬게 된다. 늘 빠른 세상에 맞춰 살던 내가, 소담이 덕분에 잠시 멈출 수 있었다. 그 느림이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.


4️⃣ 한 잔의 물이 만든 마음의 평화

물을 다 준 뒤,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다시 베란다를 바라봤다. 소담이는 어느새 잎이 한층 더 반짝이고 있었다. 흙의 냄새가 공기 중에 은은하게 퍼졌다. 나는 손끝에 남은 물기를 닦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. 그 촉감이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부드러운 인사 같았다. 도심의 소음은 여전했지만, 내 마음은 한결 조용했다. 식물에게 물을 주며 배우는 건 단지 돌봄이 아니라, 나를 돌아보는 법이었다. 도시정원 속 작은 초록 하나가 내 삶의 리듬을 바꾸고 있었다. 내일 아침, 햇살 아래에서 소담이가 더 싱그럽게 빛나길 바라며, 오늘의 하루를 천천히 닫았다.